라디오 팟캐스트 - 라디오 좌파명리 시즌4

[사연 접수] 정미일주 사연신청합니다.(1967년 정미년 남성)

갑을병정 | 2020.10.04 16:53 | 1,306

저는 결혼한 지 18년 되었고 결혼 전 2년에 걸쳐 5번만 남편과 만나고 결혼하였습니다. 당시 남편이 해외에 있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시아버님의 강력한 결혼추진으로 얼떨결에 급하게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거의 20년 가까이를 살아오면서 사회 활동을 안하는 것 인지 못하는 것 인지 모르겠는 남편을 이해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함께 원망도 하고 미워도 했습니다. 최근 5년은 남편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가끔은 우리가족을 위해 자기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희생한 것 같은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또 올해 초에 남편 추천으로 라좌명을 알게되어 방송을 들으며 남편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십이운성이 묘이고 남편은 관대입니다. 일지는 같은 미토입니다. 

결혼 생활 내내 삶에 대한 너무 다른 성향때문에 남편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두사람 다 토가 많아서인지 서로의 감정을 심하게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가끔 부부싸움을 해도 제가 남편이 정말 싫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고 남편은 저에게 말로 상처 주거나  심하게 화를 낸 적 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남편은 화를 못내는 사람인것 같습니다. 도덕적 가치관과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는 비겁과 관성이 강한 계미일주, 제 남편은 식상이 강한 정미일주입니다. 저는 거의 모든 것을  교과서와 책, 설명서를 보고 배우며, 계획대로 해야 하며 근거가 있어야 받아들이는 이과적 성향의 사람입니다.  제 남편은 다양한 호기심과 직관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텍스트와 규칙에  갇혀있는 내 좁은 시야를 세상을 향해 넓혀주고 다양한 방향을 알려준 사람이 남편이고 결정을 잘못하는 저에게 현실적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족에게 보다 적절하고 합리적 판단을 해주는 남편을 믿고 존경합니다.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접하게 해 준 라좌명에 무엇이라도 도움이되고 소통하고 싶은 것은 우리 부부의 공통적인 생각이지만 식상이 강한 남편은 생각만 주고 관성이 강한 제가 남편 사연을 열심히 적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면서요.  남편과 저는 타인에게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극히 꺼리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인생 전반을 소상하게 알리는 글을 적고 있는 것을 보며 라좌명팀의 대단한 힘을 느낍니다.



1. 갑을병정의 남편/남성/음력 평달 1967년 9월 7일 오전7시/임대업

2. 성향 가치관 성격 
 1) 남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지나쳐서 남을 배려하다가 자기 것을 못 챙기는 경우가 많음.  
2)성격이 급함. 기다리는것을 힘들어하고 일단 행동하는 것을 선호함. 식당에서도 일행이 다 먹기 전에 먼저 일어나 나가 있음.
3)물건 정리를 잘 못한다. 심지어 정리되어 있는것을 싫어하고 정리된 상태를 답답해 함.  
4)너무 뜨겁거나 찬 것을 잘 못 먹는다. 밥이나 국도 밥상 위에서 30분정도 지나서 뜨겁지 않을 때 먹고 물도 냉장고에 든 찬물은 먹지 않음.
5)정치 경제 과학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호기심이 많아 얇고 넓은 지식이 많음.  큰 흐름을 알지 못하면 답답해 하고 다양하게 탐구해서 흐름을 파악한다. 10대 후반부터 신문보는 것을 좋아하여 여러방면에 관심과 지식이 많고 특히 한국 근대사에 큰 관심과 열정이 있음.
6)근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좋아함.  마트 장보기나 주문식사 픽업 등을 전혀 귀찮아 하지않고 좋아한다. 하지만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다 쓴 휴지 넣은 것은  귀찮아함.
7)보기에 선해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자기만의 가치관과 주관은 아주 뚜렷하다.  남에게 지시받거나 강요당하는 것은 참지 못하고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타인에게 자기 생각이나 가치관을 잘 드러내거나 강요하지도 않음.
8) 사람이 가벼워 보이는 것을 싫어해서 평상시는  말 수가 적고 무표정으로 지내나 대화를 시작하면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매우 다정하게 대화하며 분위기 맞추어서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9)취향이 고상하며 눈이 높은 편이나 스스로가 돋보이고 주목받는 것을 매우 싫어해서 멋을 내고 화려하게 자신을 꾸미거나 남에게 과시하는 것은 싫어함.
10)직업을 가지는 것에 있어서 스스로가 완벽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일이나 사업을 하는 것을 꺼렸음.  스스로의 능력을 과소 평가 하는 경향이 강함.
11)  2시 ~4시에 낮잠을 잘 잠. 10시 이후에 집안일 청소 마트 장보기등 몸을 움직이는 일을 을 하는 것을 좋아함.
12)  외모에 대해서는 별 관심은 없으나 체격이 좋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눈에 띄는 외모임.
13)  타인이 배신하거나 기만 하여도 그 사람이 당황 할 것을 염려하여 알고도 모른척함.
14)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챙겨주는 편인데 챙김을 당하는 사람이 자신이 무능력자로 느껴질 정도로 과잉 보호함. 
15) 경제적 손실이나 물질적인 손해는 쉽게 받아들이나  사회정의나  부조리에는 몹시 흥분함.
16) 스스로에게 쓰는 돈은 매우 아끼나 남을 돕거나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것에는 적극적인 편임.
17) 혼자있는것을 좋아함. 그렇지만 아는사람 친척 친구 후배들과의 관계는 나쁘지않고 좋은편 임
18) 술은 많이 하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한두번정도 혼자 조금씩 마시는편이며 담배는 피우지 않음.
19) 꿈을 많이 꾸는 편이고 밤에 자다가 일어나기도 하며 잠꼬대도 가끔함.

2. 과거이력

* 기유대운(1세~10세0
아버지가 무서워서 불안에 떨었던 것을 빼고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냈다.  
공무원이신 아버지(음력 평달 1937년 4월 13일 오시 12시) 와 전업주부이신 어머니(음력 평달 1939년 01월 08일 6시 묘시) 밑에 누나 여동생 남동생과 함께 자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인 가정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자기고집이 세고 일욕심이 너무 많으셔서 공무원 생활과 과수원 농사를 함께 하셨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꿈인 농사일을 하느라 가족을 제대로 돌보기 힘드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왠지모를 불안함으로 가족에게 이유없이 화를 내고 폭력을 가해 가족들은 항상 아버지의 눈치만 보며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족들은 아버지 기분이 좋으면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괜찮았고 아버지 기분이 좋지않으시면 숨쉬는 것조차 조심하고 지냈다. 어릴적 해질무렵 아버지께서 퇴근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며 집 뒤뜰로 뛰어들어 가곤 했다. 그래도 그때 우리가족은 행복했다.        

9세 때 (기유대운 을묘년) 손가락을 심해서 베어 병원에 갔으나 의사가 자리를 비우고 없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의무병 출신인 아버지가 마취하지 않고 손가락을 직접 집어주셨다. 너무 아팠지만 아픈표정이나 느낌을 들키면 안 되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며 참았다. 지금도 살을 뚫고 지나가던 실의 느낌이 생생하다. 


* 무신대운(11세~20세)

고등학교때(17,18,19세 계해 무자 을축) 사는것이 허무하게 느껴져서 학업에 집중 할수 없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빨리 시간이 지나서  졸업 하기를 바라며 보냈다.     
 

* 정미대운(21세~30세)

21세 정묘년 대학들어가고 나서 모든것이 의욕적이고 사는것이 즐거웠다. 

27세 계유년 군대제대 후 아버지 추천으로 미국 어학 연수감.

28세 갑술년 귀국하여 다니던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준비함.

29세 을해년 미국으로 출국하여 전공을 바꾸어 대학 학부 편입함. 이후 대학원과정까지 3년에 마침.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위해 모든 나의 욕망은 무시하고 학업에 매진함. 여행이나 미국생활 경험, 이성교제 등  나를 위한 시간들은 한국에 있는가족에 대한 미안함으로 거의 하지않고 공부만 하고 지냄.  


*병오대운(31세~40세)

31세 정축년 

학부 마지막 학기 부터 갑자기 급격한 체력저하와 함께 자신감이 없어지며 뭔가 잘 안될 것같은 느낌이 들었음. 항상 피곤하고 기가 빠진 듯 했음.    

33세 기해년

졸업 후 한국으로 잠시 귀국 했다가  IMF 외환위기로 한국의 취업 상황이 좋지않아 취업을 위해 캐나다로 다시 출국 하여 다국적 통신장비 업체에서 일함.  

35세  

2001년 1월 결혼 

1999년도에 선 보았던 아내와 2000년 여름 잠시 귀국 하였을 때 갑작스런 상견례를 하고(아내는 선보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음) 6개월 후 결혼함. 아내생년월일시 ( 음력평달 1971년 09년 06일 23시 50분 계미일주)

2001년  3월 경

회사에서 정리 해고됨. IT 버블 붕괴로 통신 장비 관련 다국적 기업 이었던 회사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게 되었고  그 회사도 수 년 후 인수합병되어 없어짐.

2001년 10월 큰아들 출산 (양력 2001년10월 22일 0시 50분 무오일주)

36세 임오년 

2002년 5월 한국으로 귀국하여 부모님댁에 함께 지냄 . 6개월 후 분가함. 

아래 여러가지 이유로 아내와 의논하여 일단 한국에 가서 상황을 재정비 하고 다시 캐나다로 오기로 하고 일단 귀국함. 
1. 2001년 911 미국 테러로 진행중이던 영주권진행이 지연 2. 북미권의 취업난도 심해져서 구직이 어려움. 3. 누나집의 사업부도로 대신 빚을 갚아야했던 부모님의 경제사정이 갑자기 어려워짐 4. 외국에서 아내 혼자서 아이양육하는것을 아내가 힘들어함. 

2002년 8월 아내가 약국 개국. 

아내는 개국에 뜻이 없었으나 약국 할 만한 자리가 갑자기 나와서 일단 약국 개국 하기를 내가 권유 했고 아내는 남편의 권유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편이라 일단 개국함. 

 

이 후 재 출국 계획을 접고 각종 전문직 면허와 자격증 관련 준비를 하였으나 잘 되지 않음.

관성이 강한 아내는 아내는 뭐라도 하라고 재촉 하였지만 아버지의 실망과 타박이 걱정되어 선뜻 무엇도 시작하지 못하고 각종시험 준비만 열심히 함.

아내는 당시 나에 대해 얼굴이 불에 그을린 사람 같았다고 한다. 얼굴 색이 갑자기 검붉고 어두워지고 관자놀이 쪽에 기미가 끼고 뭔가에 쫓기는 사람 처럼 불안초조해 보였다고 함.  

30대는 돌이켜보면 너무 힘들어서 지금도 생각조차 하기 싫은 때라고  여겨짐.   

 

* 을사대운(41세~50세) 

 

40대 초반에는 영어학원 강사나 벤처기업 직원으로 잠시잠시 직장을 다녔고   40대 중반 영어학원을 열어 2년정도 운영하기도 함.

41세 정해년 2007년 9월 둘째아들 출산. (양력 2007년 9월 26일 5시 10분)

43세  2009년 1월   
3~4년간 혈액암을 앓으시다가 아버지 돌아가심. 1월에 돌아가셔서 무자년에 돌아가신것으로 보이고 기축년은 축술미 삼형이있는 해인데 상속관련하여  큰 문제는 없으나 작은 분할 문제 등이 생겼으나 잘 처리됨.  

47세 계사년 2013년

아이들의 학업을 위해 서울로 가야한다는 아내의 강력한 주장으로 1월에 아내를 빼고 아이들과 나만 서울로 이사를 갔다가 작은 아이가 적응을 잘 못해 3개월만에 다시 진주로 내려옴. 

이후에 첫째는 9월에 영국으로 조기유학을 갔다가  1년후 다시 돌아옴. 사춘기때  외국을 가는 것이 좋을 것같다는 역술인의 의견을 참고하여 경제적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조카들이 공부하고 있는 보딩스쿨로 큰아들을 보냈으나 아이가 통제된 기숙사 생활을 힘들어해서 1년이 조금 지나서 다시 한국으로 오게 함.

 

48세 갑오년 2014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아이가 학교적응을 잘 못함. 선생님의 권유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ADHD 판정을 받음. 둘째가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수시로 학교에 불려 다니며 상담받고 뒷 바라지 함.

아이가 학교 적응이 어려운 것을 알고나서는 둘째 중심의 삶을 살며 교과서나 교재를 사서 공부도 시켜보고 운동도 시켜보며 지내나 아이는 여전히 학교적응을 잘 못하고 학교에서 특별한 아이로 지내고 있음.

아내는 약국일로 저녁9시가 넘어 들어오고 초기 10년간은 일요일만 쉬고 공휴일도 없이 일해서인지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고 주말마다 몸살을 앓아 세월이 갈수록 집안 일과 아이 양육과 교육은 내가 하게 되었음.

 

3. 질문

1) 사주명리를 많이 믿으시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철학관상담을 가끔 받아 보았습니다. 부산의 모 도사님이 30대 중반인 제게 직업이 없는 사주라고 하며 부동산 공부나 하며 지내라 하였는데, 엄한 아버지의 질책을 피하느라, 학교 적응 못하는 둘째를 돌보느라, 몸 약하고 일 많은 아내를 돌보느라 그 도사님 말처럼 정작 내 생활은 없이 50대 중반이 되어버렸습니다.  둘째를 잘 부양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적인 안정이 갈수록 더 중요할것 같은데 앞으로 저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내도 올해 안에 약국을 폐업하고 집안 일을 하며 뒷바라지 하고 싶어합니다. 일단 지금 관심있는 것은 골프 티칭프로가 되는 것과 작은 프랜차이즈 자영업을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전혀 하지 않았던 부동산과 장기주식투자에도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다만 아이들과 가족들의 안정적인 삶을 바랄 뿐 입니다.

2)  둘째아들은 사실 학교교육을 잘 따라 가지 못하고 약간의 공격적 성향으로 교우관계도 원활하지 못합니다. 집중을 못하고 타인의 관심을 끌기위해 약간의 폭행과 욕설을 하는것 빼고는 (ADHD성향) 부지런하고 인정이 있고 약속을 잘 지키고 항상 잘 웃고 밝은 아이라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저는  둘째가 태어난 순간부터 이세상 그 누구보다 (아내보다 큰 아이보다) 더 둘째를 사랑하고 좋아 하였습니다. 아이의 원국은 오행은 다 갖추고 있지만 간여지동의 목과 수가 강한 사주라서(일주 계해 시주 갑인) 삶이 평탄할 것같지는 않은데 아이가 자신의 삶을 어느정도라고 정상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원국에서 어떤 부분이 우리 아이의 정신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나쁜것은 최소화 하고 좋은방향으로 갈수있도록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이의 배우자 운과 자녀운에 대해 명리 책을 뒤져보면 결혼 후 힘들 수 있다고 보여지는 것같은데 결혼은 안 하는 것이 좋을까요? 

3)큰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되었습니다. 동생을 우선시 하는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큰 아들은 지금 자기세계에 갇혀 있는 듯 합니다. 무기력증이 심한 것 같고 게임말고는 하고 싶은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욕심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런 자신의 상황과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입시결과 때문에 부모에게 미안해 하는 것 같습니다. 엄마보다는 아버지와 더 대화가 통하고 아버지를 더 좋아 합니다.  비겁과다에 인성 혼잡이며 무관성이라서 (지장간에도 목 관성이 없음) 진로나 직업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을까 우려되는데 어떻게 조언하는 것이 좋을 까요?  태어난 곳에 가족과 함께 있는것이  좋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큰 아이는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생후 7개월에 한국으로 온 아이인데 한국에 있는 것이 좋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될까요? 현재는 낮과 밤이 바뀌어서 생활을 하고있습니다. 

 

적다보니 글자수가 많아져서 힘들게 읽으실 황작가님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전체 에피소드를 정주행으로 2번이상 듣다보니 강헌선생님, 지산선생님, 낯선 피디님,죽돌님은 저에겐 이미 오랜 가족같은 지인으로 느껴집니다. 목소리 미남 죽돌님이 출산 휴가 가셔서 그 목소리를 한동안 못듣게 되어 정말 아쉽습니다.

오랜시간 방송을 이어 가려니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실 것 같습니다. 라좌명은 들으시는 분들께 삶의 희망과 내적치유의 길을 열어 주시는 방송이니 어려우시더라도 좀 더 힘내주십시오. 응원합니다. 

그리고 강헌 선생님 건강 걱정이 많습니다. 많은 허니교 신도들을 위해서라도 건강 잘 챙겨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규륵2020.11.20 16:12

응원합니다

이스턴샤인2020.10.07 22:54

안녕하세요~
남편분의 시간 계수가 위태로워 보이네요. 관이 약하다보니 비겁의 주체성을 쓰지 못하셨나봅니다. 미국을 가셨던 것은 도움이 되셨던 것 같은데 병화 겁재를 감당하기엔 관이 너무 약했던 것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직업이 없는 사주라고 이야기 한 것도 이 때문일 것 같은데 이런 식의 통변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 관성을 살릴 수 있는 업종으로 하시면 좋을 것 같고 식상의 기운을 소모시켜 재성을 키우는 것도 관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사회적 활동을 하시면 좋겠네요. 수기운 강한 동네로 가시는 것도 좋겠네요. 둘째 아드님에게 애정이 가는것도 이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남편분이 아내분을 잘 만나신 것 같습니다.
이야기 나누고 싶으시면 오픈채팅에 들러주세요~

갑을병정2020.10.09 22:58

이스터샤인님 반갑습니다. 저의 두서없는 긴글을 읽어주시고 함께 고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성이  고립되고 약한 남편과 식상이 지장간에만 조금 있는 저로인해 아이들이 힘든 인생을 사는 것 같아 미안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주어진 자기 운명 속에서 좀 더 스스로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잘 찾아갈수있게 도와 주고 싶은것이 제 꿈입니다.  기묘안 철공소에는 방에만 들어가보고 약국폐업 준비, 이사 준비등으로 제대로 참여를 못 하고 있네요.  이스트샤인님 긍정태리님등 좋은 분들이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 발전 해가시는 모습  좋아 보입니다. 제 부족한 식상과 재성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조만간에 적극 참여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