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흙과 나무의 충돌…무등산 폭격기 VS 폭격기 저격수

선동열 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한겨레> 자료사진



막 개장한 서울 잠실야구장의 마운드에 선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관중석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막히는 듯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내 고향이 낳은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을 처음 봤을 때랑 같으면서 달랐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다시피 최동원의 투구 폼은 화려하고 움직임이 크다. ‘칠 테면 쳐 보시지?’하는 자신감이 그득하다.



하지만 선동열은 달랐다. 이미 광주일고 시절부터 ‘무등산 폭격기’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어떤 기자가 그 말을 제일 먼저 썼는지는 몰라도 그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말인 것 같았다. 그의 와인드업 동작은 고요하다. 그의 왼 다리와 함께 치솟은 무게 중심이 잘 발달한 상체와 함께 쑤욱 지면으로 깔리면서 묵직하고 강력한 회전을 담은 공이 탄환처럼 타석에 선 타자를 향해 날아온다. 그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공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냥 조용히 들어가시지?’



이 둘은 1987년 5월 부산 사직구장에서 연장 15회에 이르는 장렬한 명승부전을 펼친다. 아마도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불멸의 라이벌전이리라.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무승부로 끝난 이 날 경기는 이 두 투수가 모두 200개 이상의 공을 던졌고, 장장 15이닝 동안 이 두 사람 외에 마운드에 오른 다른 투수는 없었다.



다섯 살 위 최동원의 삶은 너무 짧았고 전성기를 지난 후의 인생 후반은 불우했다. 고작 몇 년 차이지만 최동원의 시대는 스타플레이어들이 자신의 주장과 권리를 누리기 힘들 때였다. 이 두 사람이 원투 펀치를 이루어 1982년 사상 최초로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최동원은 정점에서 내려오는 시점이었고, 선동열은 말 그대로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우승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최동원은 그 시점에 이미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야구선수 오승환이 올해 유니폼을 입은 바로 그 팀)와 계약이 되어 있었지만 한국 프로야구의 순항이 우선인 국내 야구 권력층의 전횡으로 그의 메이저 행은 불발되고 만다. 사주에서 ‘수’기운이 ‘용희신’인 그가 캐나다 땅을 밟았더라면 한국 프로야구의 세계 진출 역사는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선동열은 ‘임인년 계축월 계축일주’의 사주로 ‘백호’와 ‘화개’를 ‘일월주’에 ‘신살’로 품은 용맹한 카리스마의 기운이 전체 국면을 지휘한다. ‘계수’는 음 중에서도 가장 음의 기운이 강하지만 겨울의 축 ‘토’ 위에 놓이면 극단적인 힘이 된다. 한 시대를 호령하는 영웅의 기상과 뻔뻔하고 자기 이익밖에 모르는 도둑의 심보를 극단적으로 오가는 힘이다. 그 어느 쪽이든 우두머리를 향한 욕망은 숨길 수 없다.

 

선동렬 명식



‘개축 편관’은 자존심이 최우선으로 발동한다. 시쳇말로 ‘가오’가 상하면 끝이다. 머리 회전도 비상하고 배짱도 남다르다. 다만 끈기가 부족한 것이 흠인데, 지속적인 수양 혹은 훈련이 따른다면 ‘백호’와 ‘화개’의 힘까지 동반하여 당대의 주목을 받는 인물로 부상한다. ‘일간’이 신약하면 학문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힘이고, ‘일간’이 ‘지지’에 뿌리를 내리고 ‘신왕’하면 몸을 쓰는 일이나 타인을 지배하는 수사관 같은 사법 행정이나 의료업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낸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는다면 참기 어렵다.




야구 국가대표 선발을 두고 아시안게임 이전부터 많은 잡음이 일었고 급기야는 이례적으로 국회 국정감사장까지 파문은 이어졌다. 선동열의 저격수로 나선 인물이 하필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었다. ‘하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손혜원 의원의 사주가 ‘을미년 무인월 정미일 계묘시생’으로, ‘일주 정미’가 선동열의 ‘일주 계축’을 ‘간충지충’(천간과 지지를 동시에 충하는 것)하는 상극이기 때문이다. 즉 ‘정계충’과 ‘축미충’이 일어나 삽시간에 전란의 기운이 치솟아 오르는 것이다.



손혜원 의원의 ‘일주 미토’는 느긋하고 낙천적인 ‘식신’이다. 그러나 ‘정미 식신’은 관대를 동반하는 식신으로, 식신 중에서 가장 말발이 세고 집요한 투쟁심이 있는 식신이다. ‘미토’가 ‘연지’에 하나 더 있고 ‘월간 무토 상관’에 ‘투출’까지 하였으니 이 식신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이 식신의 힘으로 손혜원 의원은 디자이너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식상 발달의 약점인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는다. 게다가 손 의원의 왕성한 ‘목’의 힘이 선 감독의 명식 기반인 ’토‘를 헤집어 놓으니 선 감독이 받은 모욕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대표 선수 선발은 오로지 감독의 권한이다. 그렇지 않다면 감독을 굳이 선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천신만고 끝이긴 하지만 우승까지 거두었다. 옛말에도 승리한 장수는 벌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선수 선발 과정이 불투명한 관행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의혹도 합리적인 의심이므로 그 합리성의 영역 안에서 관행을 개선하는 쪽으로 유도했으면 서로가 명예를 지키고 동시에 한국 야구의 미래에도 도움을 되었을 것이다. 너무 뜨겁고, 너무 차가운 기운이 정면에서 부딪히면 이렇게 사고가 난다.

 

 

한겨레 [ESC] 강헌의 명리하게 2018. 11. 22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712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