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소설가 박경리 ‘인내의 통찰이 꽃피운 위대함’



사람이 태어나 자신을 주체로 자각한 뒤(비겁), 가족의 일원으로 사람의 도리를 배우며 성장하여(식상), 복잡한 사회적 관계 속에 밥벌이하는 어른이 되고(재성), 각 단계의 지위에 걸맞은 권력을 수행하며 명예를 획득한 다음에는(관성), 자신과 세계를 성찰하여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이 마지막 단계를 우리는 인성(印星)이라고 부른다.



이 인(印)이라는 한자는 도장을 의미한다. 우리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양자가 합의하면 최종적으로 도장을 찍어 이 계약의 성립을 공유한다. 요즘은 사인으로 대신하지만 모든 결재 문서에는 직급별로 도장을 찍는 칸이 상단에 자리한다. 글씨나 그림을 완성하면 작가의 아호와 날짜와 장소 등을 쓰고 역시 도장을 찍는다. 이 성스러운 마무리를 낙관(落款)이라고 한다.



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한 단계의 종결을 의미하는 권위의 상징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새로운 단계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전회에 언급한 ‘편인’이 직관적인 통찰력, 곧 번뜩이는 감각적 판단인 ‘끼’라고 한다면 ‘정인’은 같은 인성이면서도 유장하고 깊은 통찰을 의미한다. ‘편인’이 트렌드에 강한 스타라면 ‘정인’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발효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티브이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 중에 ‘편인’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매력적인 캐릭터나 감각적인 대사를 포착하는 더듬이가 발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안정하고 위태롭지만 동시에 경쾌하고 반짝이는 ‘편인’의 힘이 어쩌면 속도전의 현재 자본주의 시대에 더 각광받는 ‘십성’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비해 ‘정인’은 우선 느리다. 사소한 결정도 숙고하는 스타일이라 과단성이 모자라 보이기까지 한다. 무언가에 몰두하기 시작한다면 자신이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도출될 때까지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습성이어서 옆에서 보면 도대체 뭘 하기는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을 받을 지경이다.



하지만 봉건시대에는 ‘정관’보다 더 우대받은 것이 ‘정인’이었다. 권력은 무상하지만 학식과 경륜은 영원한 까닭이다. 특히 사주팔자 중 ‘월지’에 ‘정인’이 하나만 놓여 있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주체의 잠재적 능력을 암시하는 자리에 ‘정인’이 놓이고 그 주변인 ‘월간’이나 ‘연지’에 ‘관성’이 놓여 ‘인성’의 힘을 돕는다면, 혹은 더 나아가 ‘재성-관성-정인’으로 상생의 흐름을 만든다면 그 ‘월지’의 ‘정인’은 밤하늘에 홀로 빛나는 지혜와 현명함의 별이 될 것이다.



꼭 그 자리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오행으로부터 ‘생조(스스로 힘을 얻어 소생함)’가 되는 ‘정인’을 가졌다면 기본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품성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파고드는 인내심이 대단하기 때문이고 책상 앞에서 꾸준히 버티는 힘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경쟁으로 점철된 현재의 교육제도에서 공부의 자질은 첫째가 ‘정인’이요, 둘째가 발달한 수(水) 오행을 지니는 것이고, 셋째가 ‘관성’과 ‘양인’을 가지는 것이다. 수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말하며 ‘정관’과 ‘양인’은 인정받고자 하는 기운과 경쟁에서 이기려는 호승심을 각각 대변한다.

 

박경리 명식.

 

‘월지’에 아름답게 ‘해수 정인’을 놓은 이 사주의 주인공은 한국현대문학사의 대작가 박경리의 명식이다. ‘인성’ 중에서도 창의적인 데다 ‘지지’가 ‘해-자-축 인성’의 수 바다를 이루니 끈기와 깊이에 관한 한 따를 자가 없겠다. 게다가 넘치는 수의 힘을 안성맞춤으로 ‘연지’의 ‘인목’이 적절히 흡수하니 ‘해수 정인’의 힘은 더욱 강고한 운동성을 지닌다.

 

다만 ‘관인생할 금 관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 명식의 특징이다. 이는 관직과 남편과의 인연이 약함을 암시한다. 실제로 박경리는 불우했던 유년의 학창 시절 엄청난 독서광이긴 했어도 그리 학업 성적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가정보육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황해도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결혼도 했지만 한국전쟁 중에 남편과 아들을 잃었으며 교사 생활도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당대 문단의 권력자였던 소설가 김동리와의 어설픈 인연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그는 서른 늦은 나이에 김동리의 추천으로 소설가로 데뷔한다. 박경리라는 필명도 김동리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관성’이 없는 대신 ‘천간’에 장렬하게 두 개나 튀어나온 ‘병화 상관’의 왕성한 기운으로 교단이 아닌 글과 말로 세상에 나아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단편 작가로서는 그리 조명 받지 못했던 그는 여류 작가로선 드물게 장편소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대가의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용희신’인 ‘재성’과 ‘식상’ 대운이 38살부터 이어지면서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과 <시장과 전장>을 연이어 발표하며 질주의 출발점에 들어선 박경리는 한국 문학사의 금자탑이 될 <토지>를 43살부터 26년간에 걸쳐 대장정을 마무리 짓는다. 인내의 통찰의 ‘정인’의 꽃이 마침내 이 작품에 이르러 만개한 것이다. 지금은 점점 사라져 가는 ‘정인’의 위대함이라고밖에 서술할 다른 말을 찾지 못하겠다.




 

한겨레 [ESC] 강헌의 명리하게 2018. 11. 07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693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