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무거운 것도 가볍게 가볍게! 김어준의 미덕


김어준. 박미향 기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존속할 수 없다. 아무리 튼튼하고 강해도 먹지 못하면 끝이다. 그래서 인간이 겪는 고통 중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으로 기근을 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먹는 것만이 아니다. 추위와 더위로부터 몸을 지켜야 하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안전한 주거가 보장되어야 한다. 의식주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또한 종의 관점에서 인간을 존속하게 하는 것은 생식이다. 생식을 통해 번식하지 못하면 인간도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소멸하게 될 것이다. 인간 노동력의 핵심 요소였던 봉건시대까지 어느 지역에서건 다산(多産)을 숭배했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행위였을 것이다.



비견과 겁재, 곧 주체로서의 비겁이 낳는 것은 식상, 즉 식신과 상관이다. 비겁에서처럼 일간과 음양이 같은 것은 식신이 되고 다른 것은 상관이 된다. 봉건시대에 탄생한 명리학이 글자 그대로 ‘먹을 복’인 식신을 길신으로 숭상한 것은 당연하다. 식신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욕망인 식욕은 의식주라는 생존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지만 요즘의 수많은 먹방 예능 프로그램의 창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인간의 다양한 문화적 욕망을 대표한다. 즉 호모루덴스로서의 인간의 유희적이며 창조적인 욕망이 식신의 본능이다.



육친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앞에서 살짝 언급되었지만, 식상은 남녀 공히 자식이다. 그래서 명리학의 고전 텍스트들은 입을 모아 여성의 명식에서 월주에 식신이 놓이는 것을 굉장히 높이 쳤다. 사회적 활동이 허용되지 않고 오로지 대를 잇고 노동력을 확보하는 출산과 양육이 지상 과제였던 시대의 초상이다.



의식주를 넘어서 식상이 의미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언어, 곧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하나의 어린 생명이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사회적 식량이랄 수 있는 소통 수단으로서의 말과 글이다. 모든 인간은 말을 배우며 사회화된다. 이 언어를 매개로 인간은 최소의 사회적 단위인 가족, 아니 이 말보다도 훨씬 정곡을 찌르는 말인 ‘식구(食口)’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식상은 언변의 힘이다. 식신이 예술적 표현에 강점이 있다면 상관은 논리적 표현에 뛰어난 특징이 있다. 식신이 시인의 언어라면 상관은 평론가, 논객의 언어이다. 말로 먹고사는 직업, 가령 예술가, 교육자, 변호사, 광고 혹은 홍보 전문가, 아나운서나 기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식상은 가족의 가치를 깊게 생각하고 가족에 의지한다.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어도 혼밥, 혼술은 꺼리고 꼭 서너 명 어울려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파티를 좋아하는 것은 식신의 본성이다. 취미성이 강한 동호회 활동이나(식신) 사회적 관심이 높은 시민단체 활동에 적극적인 것도(상관) 커뮤니티를 사랑하는 식상의 힘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눈망울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표현하는 어린아이의 심성이 식상이다. 아이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마치 오랜 지기처럼 어울려 잘 놀고 또 사소한 것으로 틀어지기도 한다. 식신의 긍정적이고 낙천성인 성향은 그러나 삐끗하면 게으름, 무책임함으로 이어질 수 있고 큰일을 도모하는 리더십이 박약한 경우가 많다. 식신은 사업을 하더라도 극히 소수의 맘에 맞는 사람들끼리 도모하는 경우가 훨씬 생산적인 결과를 낳는다. 요즘 말로 하면 스타트업에 강하다고 할까?



 


김어준 명식.



네이밍 전문가로 알차게 소규모 광고회사를 오랫동안 꾸리다가 국회에도 입성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경우 일지와 연지에 탄탄한 식신을 안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그의 명식은 전부 엉터리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한번 꽂힌 일에 집요한 전문성을 쌓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식신의 본질을 가장 잘 구현한 인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도표로 제시한 김어준의 명식도 연지와 일지에 식신을 강하게 발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식신 사주이다. 식신의 옆에 앞으로 얘기하게 될 본격적인 사회적 활동의 표현인 재성과 관성이 왕성하다. 먹는 것, 특히 고기를 좋아하고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유쾌하고 낙천적이지만, 자신의 신념을 일관되게 견지하는 굳센 의지도 지녔다. 피상적으로 보면 일간 무토가 허약한 신약 명식인 것 같지만 지지의 네 글자 모두의 지장간에 무토가 숨어 뿌리를 내리고 있으므로 이 무토는 글자 그대로 ‘무대뽀’적인 무토가 된다.

 

심각한 정치 사회적 이슈를 날카롭지만 너무 무겁지 않게 해학적으로 쉽게 풀어내는 것은 그만의 장기로, 21세기 한국 언론의 지평에 ‘딴지일보’와 ‘팟캐스트 나꼼수’라는 새로운 대안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김어준의 명식이다. 피시(PC)와 모바일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퍼스널 미디어 시대에 새롭게 각광받는 식신의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가족이 무너지고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 식신의 회복이 필요하다.



 

한겨레 [ESC] 강헌의 명리하게 2018. 06. 13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489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