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개그맨 이경규가 걸어온 길


개그맨 이경규. <한겨레> 자료 사진



자신의 기준 오행, 즉 일간과 오행이 같고 음양까지 같은 글자를 비견이라고 했다. 그럼 오행은 같지만 음양이 다른 글자가 있을 터이니 그것을 겁재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의 뜻은 ‘재물을 빼앗는다, 위협하다’가 되니 첫 인상은 별로 좋지 못하다.



사실 십신의 이름들에 대해 난 못마땅하다. 봉건시대의 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옛것에서 새로움을 찾는 지혜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옛것의 틀에 얽매인다면 우리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신분제를 전제로 한 봉건사회는 십신 중에서 겁재와 상관(傷官), 편관(偏官)과 편인(偏印)을 흉한 십신으로 보았다. 정관(正官), 정인(正印), 정재(正財), 식신(食神) 등, 이른바 바를 정자 시리즈를 숭상한 반면 ‘빼딱하고 치우친 편(偏)’ 십신들을 흉하게 불렀는데 이를 각각 4길신과 4흉신이라고 보았다.



봉건 시대가 4길신을 총애한 이유는 자명하다. 관직에 나아가고, 학문이 높으며, 재물을 쌓고, 의식주에 구애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도 질서 아래서의’라는 단서가 붙는다. 이에 비해 정관을 공격하는 상관(글자의 뜻도 관직을 상하게 한다는 말이다), 정재를 허무는 겁재, 밥 그룻을 뒤집는 편인 등을 흉한 기운으로 인식했다. 이 기운들을 흉하게 여기고 꺼린 것은 기존 권력 질서에 대한 비판과 전복의 의미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왕을 정점으로 수직적 신분사회였던 시대에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공화국 시대에 살고 있고 정치적 체제뿐만 아니라 성과 인종, 지역 등 인간에 대한 모든 편견과 차별을 적극적으로 극복해가려는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여전히 봉건적 잔재가 여기저기에 잔존해 있지만 시대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미래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옛날의 시각으로 오늘 인간의 운명을 감명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길을 밝혀주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만 입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자가 상관이 강해 일부종사는 어렵겠다느니, 편인을 두어서 기생 사주 혹은 물장사 사주라느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속설들이 그런 것들이다.

 

우주에 어찌 차별과 편견이 있겠는가? 저마다의 고유한 성질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우리가 아귀다툼의 지상의 삶을 딛고 있다고 해도 우리 각각을 구성하는 본연의 기운은 다름 아닌 우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이경규 명식

 

겁재는 비견과 같이 나와, 같은 오행이므로 강한 주체성이다. 그러나 음양의 속성은 반대이므로 비견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하다. 비견이 자신의 주체성과 자존심을 솔직담백하고 직선적으로 드러낸다면 겁재는 다양한 표정과 성격을 함축하며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비견이 자신을 굴복시키려는 세계와 맞서 싸우려는 투쟁의 기운이라면 겁재는 그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이 창조하려는 혁명의 기운이다.

 

그래서 겁재는 극귀(極貴)하고 극천(極賤)하다. 비견이 밝은 낮의 기운이라면 겁재는 어둠과 비바람 속의 기운이다. 비견이 패배하면 분통을 터트리지만 겁재는 지극한 허무감에 빠진다. 그래서 자신의 생애를 건 일이 무너졌을 때 자신을 죽음으로 몰 힘도 겁재의 힘이다. 자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울증,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같은 정신적인 고통에 잘 걸리는 것은 겁재가 가진 힘이 가공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는 마음가짐이 옛날엔 칭송받았을지 모르나 무한경쟁 시대인 지금에선 저주일 수 있다.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의지가 어느 때보다 소중한 가치로 떠오른 지금, 겁재는 더는 흉신이 아니라 오히려 반겨야 할 기운이다. 그리고 한번 잡은 것은 끝까지 움켜쥐는 지속성도 강하다. 다만 생애 궤적의 진폭이 큰 만큼 드라마틱한 굴곡은 필수적인 옵션이다. 임자 일주 자체가 겁재이고 또 연지와 시간에 겁재가 높은 데다 이 겁재를 돕는 월주의 금 정인이 천간에 투출하기까지 한 이 명식(사진)은 더할 나위 없이 강한 겁재의 명식이다.



일찍 데뷔했지만 또래보다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무명의 시간은 다소 길었다. 그러나 20대 후반 정상에 오르고 난 뒤 30년이 넘도록 그는 제왕의 지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다른 분야에 비교해 전성기가 매우 짧은 개그계에선 이례적이고도 이례적인 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는 예능 대부라고 불리는 개그맨 이경규다.

 

‘몰래카메라’와 ‘양심냉장고’로 국민 예능 스타로 떠오른 그는 버럭 화를 내는 것조차 그만의 트레이드마크로 만들었고 개그맨 강호동을 위시한 수많은 후배의 재능을 이끌어냄으로써 엄청난 영향력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어찌 보면 그는 그 이전의 선배 코미디언이나 또래 개그맨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경금대운 임진년에 공황장애로 고생한 것도 이 겁재의 후유증이다. 그러고 보니 겁재가 강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나 장 시벨리우스 모두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으로 고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한겨레 [ESC] 강헌의 명리하게 2018. 05. 30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470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