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실패,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비견’의 현신,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컴퍼니 제공



젊은이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 지긋한 어른들도 자신이 원하는 삶은 어떤 거냐는 질문 앞에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누구에게도 구속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물론 이 말 뒤에는 꼭 ‘먹고 살 만한 재산이 있다는 전제 하에…’라는 말이 힘없이 따라온다.

 

구속받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은 없다. 누구나 자유를 꿈꾸지만 인간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어떠한 구속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은 그 자유의 대가가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이미 체득하거나 오랜 시간에 걸쳐 무의식적으로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근 후 술자리에서 “이깟 직장 내일 바로 때려치고 만다!”고 호기를 부리다가 정작 다음 날 아침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신하게 출근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많은 직장인의 초상은 너무나 익숙하다.

 

요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열 살쯤에는 화려한 스타 연예인을 꿈꾸지만 열일곱 살만 되면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꿈으로 남게 된다. 그런데 이 꿈의 욕망을 현실로 끌고 오려는 이들이 있다.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작은 커피숍이나 공방의 주인이거나 다양한 형태의 프리랜서의 삶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날로 커지는 중이다. 큰 조직에 적응하는 것이나 홀로 먹고사는 것이나 어차피 모두 힘든 거라면 내 삶의 룰은 내가 정하는 방식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한겨레> 자료 사진



명리학에서 말하는 십신 중 첫 번째 속성 ‘비견’(比肩)은 바로 이와 같은 독립, 혹은 독자성의 욕망이다. 이 욕망은 무한경쟁의 본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나를 믿고, 얼마든지 세계와 싸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비견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뜻인데 나 자신과 같은 힘, 혹은 나 자신 그 자체를 말한다. 육친 상으로는 형제가 비견이다. 옛날 봉건 정착 사회에서는 형제가 많은 것 자체가 자기 동네에서 자신의 힘이었으므로 형제가 중요했지만, 각자 이동성이 강한 핵가족 시대에는 형제가 별로 중요한 변수가 못 된다. 오히려 동업자나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고받는 친구가 비견의 역할을 더 크게 한다고 본다. 명리학의 작은 경이로움은 라이벌, 곧 경쟁자도 비견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자극하는 경쟁자야말로 자신의 동업자이며 나아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서태지 명식

 

비견은 자신감을 자양분으로 하는 독립의 성질이다. 이것이 강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인정 욕구가 강하다. 따라서 약간의 왕자병이나 공주병은 필연적인데 성장 과정이나 결혼 생활에서 이것이 지속적으로 억압되면 분노조절 장애가 발생한다거나 제반 사회적 관계를 회피하고 자신 속으로 퇴행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 비견은 본래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게 양육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시급하다. 자율권을 전폭적으로 주고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쪽으로 유도한다면 그 비견은 막강한 생존 역량을 지니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저놈은 사막이나 북극에 떨어뜨려 놓아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라고 말하는 그 기운이 바로 비견의 본성이다.

 

오늘 초대한 명식을 보자. 이 명식은 ‘임수 일간’에 옆으로 연간과 월간이 나란히 같은 ‘임수 비견’이고 ‘연지 자수’는 비견과 같은 묶음인 겁재이므로 ‘일간 임수’의 힘이 사주의 반을 차지하는 데다 일간 왼쪽의 시간 경금 또한 금생수로 임수를 도우니 임수의 기운은 막강하다. 그런데도 오행 모두를 다 갖추었고, 오른쪽 임자 연주부터 왼쪽으로 수생목,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다시 금생수로 아름답게 순환하니(이렇게 한 방향으로 오행이 상생으로 순환하는 것을 연주상생이라고 한다) 그 흐름 또한 도도하다.

 

임수에서 출발하여 한 바퀴 돌아 임수로 회귀하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힘이다. 지지의 ‘인오술’도 주목할 만하다. 이 세 개의 글자가 모이면 삼합(三合)이라고 하여 또한 가운데 글자인 ‘오화’로 수렴하여 막강한 화 기운의 연대가 성립한다. 임수 비견과 오화 정재의 기운이 우뚝 대립한, 자신의 힘과 재성의 힘이 자웅을 겨루는 신왕재왕의 명식이다.

 

게다가 대운도 10대 때부터 목과 화라는 자신의 활동 에너지를 활성화하는 용희신(자신의 사주팔자 8글자 중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오행) 대운으로 흘러 어린 나이에 엄청난 인기와 부를 쌓았다. 이렇게 비견 수가 강하면 재물의 성인 재성 화를 꺼트리기 마련인데 (왕성한 사업 욕구를 가진 이들이 자주 망하고 또 재기하고 하는 경우이다) 재물의 기운인 화도 만만치 않으므로 이를 일러 옛날 용어로 ‘재기통문’(財氣通門 재물의 기운이 문을 통과)이라 하여 재물을 지키는 힘이 된다. 재물의 짐을 질 나의 힘이 약하면 재물을 얻어도 그 아래 깔리기 마련이고, 나의 힘은 강한데 재물 운이 약하면 ‘군겁쟁재’라 하여 그 재물을 보고 달려드는 이들이 많아 지키기 어렵다.

 

이 명식의 주인은 세상의 통념과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욕망을 의지로 관철하여 비록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으나 이십 대 초반 갑진 대운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일찍 탕진하는 많은 스타와는 달리 검소하고 꼼꼼한 정재적 기운으로 재산도 허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기운이 너무 넘쳐나는 2011년 신묘년에 스캔들로 열성 팬들의 신뢰를 상실하는 아픔이 있었다. 199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기린아, 한때 문화 대통령으로까지 불린 서태지의 명식이다.

 



한겨레 [ESC] 강헌의 명리하게 2018. 05. 16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449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