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뚝심의 ‘토’ 기운 김영삼···금융실명제 단행한 이유 있었다

1993년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 <한겨레> 자료사진

 
격렬한 투쟁성과 열정을 지닌 ‘화’의 기운이 정치적 지평에서 이상을 꿈꾸는 개혁적 진보의 최전선이라면, 온화한 ‘목’은 인권과 복지의 휴머니즘을 실현하려는 사민주의적인 진보의 노선에 가깝다. 보수 진영의 인물 중에서도 ‘목’의 기운을 지닌 이들이 많은데 이들은 원희룡 제주지사나 유승민 국회의원이 그렇듯이 최대한 합리적인 보수의 스탠스를 지니기 위해 노력한다. 2015년 국회 원내 대표 연설에서 당시 야당도 놀라게 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직격한 유승민의 주목할 만한 연설은 ‘갑목’의 기상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청와대의 '배신 정치' 비난에 한 발 물러설 수 밖에 없었찌만 이 사건은 박근혜 권력의 몰락과 새누리당의 와해의 신호탄이 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명식

 
이 ‘목’ 기운의 반대편에 서 있는 ‘금’의 기운은 성과와 의리에 기반을 하여 현상 유지적 질서를 선호하는 보수의 성질을 강하게 띤다. 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 기운이 조화를 얻지 못하고 일방 독주하게 되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구국의 일념으로 승화(?)하거나, 승리하면 모든 것은 정당화된다는 쿠데타의 룰로 직행한다. 바로 이 금의 기운이 한국전쟁 이후 경제 개발기부터 최근까지 권위주의 중심의 한국 정치를 이끌어온 주도적인 동력이었다.


‘목’과 ‘화’ 그리고 ‘금’, 이 양극단의 두 기운 가운데에 중도적 성향을 대변하는 것은 ‘토’의 기운이다. ‘토’는 절기적으로도 음양과 사계의 환절기에 해당한다. 즉 ‘목’(봄), ‘화’(여름)라는 양의 기운에서 ‘금’(가을)과 ‘수’(겨울)의 음 계절로 넘어가는 사이가 ‘토’다. 늦여름, 초가을에 해당한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 사이의 환절기도 ‘토’다.


방향상으로도 ‘목’이 동쪽을 의미하고, ‘화’가 남, ‘금’이 서, ‘수’가 북이라면 ‘토’는 중앙이다. 협상과 각축, 중재와 알선, 물류 유통의 요지가 ‘토’에 해당하니 우리나라로 치면 크게는 기호지방, 좁게는 충청, 곧 충주에서 청주, 그리고 한밭(대전)으로 이어지는 지역이 ‘토’의 기운이 강한 곳이다. 삼국시대부터 기호를 장악하는 나라가 한반도의 헤게모니를 차지한다고 여겼으니 분단된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언제나 선거철이면 충청, 대전이 캐스팅보트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인간의 일대 기상으로도 ‘토’는 성장기(목)와 열정적인 청년기(화)를 지난, 노년의 결실을 앞두고 성숙한 사회적 활동을 펼치는 중년의 기운에 해당한다. 그리고 ‘토’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사물이 존속하는 기반이며 환경이며 자양분이다. 땅을 떠난 인간의 삶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따라서 ‘토’는 오행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적 요소의 결합이며 또한 동시에 그것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모든 대립 요소들의 조정자라는 점에서 ‘토’는 예부터 제왕의 권능을 상징했다. 하물며 후천개벽을 꿈꾸었던 정감록이 상상으로 꾸며낸 정도령의 사주도 ‘토’ 바다에 ‘화’가 가미된 명식이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토’의 뚝심이 가장 강력하게 발현된 이는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명식 표에서 보듯이 토의 기운이 하늘과 땅을 뒤덮고 있다. 이렇게 하나의 오행이 전국을 지배하는 것을 전왕(專旺)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모 아니면 도라고 할까? 소년 시절부터 미래의 목표를 ‘대통령’이라고 일찌감치 못 박고 외길로 달려온 인생다운 명식이다. 게다가 지지(地支. 땅의 기운. 가로로 네 자씩인 명식에서 아랫줄) 네 글자는 강력한 응집력과 흡인력을 보유했다. 동서남북 모든 기운을 빨아들일 만한 힘이다.


그가 1987년 선거에서 야권의 라이벌인 김대중에게 패해 3위로 내려앉자 자신의 정치 인생을 걸고 3당 합당을 감행한 것이나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뒤 측근 가신들조차 경악하게 만든 육군 내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실행한 것은 이런 무시무시한 힘의 결과이다. 이때 그의 지지율은 전국적으로 90%를 돌파했다.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자신부터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공언하며 대통령의 업무를 시작한 그는 어쩌면 역대 어느 대통령도 피해 가지 못한 불명예 퇴임의 오랜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첫번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뚝심이 스스로 통제를 상실하고 견제와 균형을 잃는다면 그것은 소통 불능의 아집이 된다.


1995년 ‘임신 대운’으로 접어들면서 둘째 아들 이외의 말은 듣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언론이 그의 아들을 언급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평생 ‘화’와 ‘토’의 호의적인 기운으로 불타게 달려온 대운이 끝장나는 순간이며 쌓아온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사족 하나. ‘기토 일간’은 ‘무토’를 동경한다. ‘무토 일간’인 운동권 변호사 노무현을 정치권으로 영입하고 김영삼 자신의 지역구를 물려준 것은 ‘토’ 오행 특유의 빛나는 혜안이었다.

 

한겨레 [ESC] 강헌의 명리하게 2018. 04. 05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391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