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날 때부터 운명!

 


1970년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처음 배운 수학은 집합의 개념이었다. 같음과 다름으로 나뉘는 세계. 서양의 사유는 모든 분야에서 이 분류의 시각을 첨예화하여 합리적 인식을 얻고자 했다. 동양의 현자들은 다르게 접근한다.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듯이 전체 속에 부분이 있고 동시에 부분에서 전체를 보았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 종결이란 없다. 그저 끝없이 순환하며 변화해 가는 것이다.
 

낮에는 국군이, 밤에는 인민군이 지배하는 지리산 자락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 속에 나오는 숨 막히는 어느 장면, 곤히 자고 있는 밤중에 갑자기 플래시를 망막 앞에 들이밀며 그 불빛 뒤 어둠 속에서 남이냐 북이냐 대답을 강요할 때, 그리고 그 양자택일적 대답의 여부에 따라 목숨이 걸린 상황은 한마디로, 잔인하다.
 

불행하게도 이 극단적인 상황은 전쟁의 국면에서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합리적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하나의 정답만을 오엠아르(OMR) 카드에 ‘찍는’ 행위로 인생의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전쟁터에 우리의 아들딸들이 오늘도 목숨을 걸고 있다. 부모가 변호사라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목수가 되겠다는 꿈을 무시하는 야만적인 시대를 우리가 만든 것이다.
 

인류는 문명을 통해 자연을 극복했다고 의기양양하지만 우리는 문명적 존재 이전에 자연적 존재다. 옛사람들은 자연을 통해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이끌어내었다. 음양론이 오행으로 더 넓게 펼쳐지는 것은 동양적 사유가 만개하는 결정적인 지점이 될 것이다. 양은 목(木)과 화(火)로, 음은 금(金)과 수(水)로 분화하고 그 두 기운 사이에 토(土)라는 전환적이고 중재적인 기운을 놓았다. 명민하신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이 오행은 사계에서 포착한 것이다. 봄에 만물의 생명이 성장을 거듭하다 여름의 울창한 만개를 맞이하고, 늦여름과 초가을의 환절기를 지나 모든 것이 열매 맺는 가을을 맞이한 후 다시 기나긴 소멸의 시간인 겨울로 돌아간다.
 

나무와 불, 그리고 땅, 그리고 돌과 물은 이 계절들을 상징하고 표상하는 개념이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본질은 바로 이 자연의 이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생로병사. 모든 태어난 것은 소멸하고 그 소멸 속에서 다시 생명이 잉태된다. 그래서 ‘오고 감’을 뜻하는 오행(五行)인 것이다. 봄이 오기 위해선 웅크린 추운 겨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봄은 여름으로 이행하고 가을을 맞는다. 만물의 본질을 고정된 요소로 보지 않고 변화와 운동의 기운으로 본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동양적 사유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 오행은 각각 양과 음의 특성을 가지므로 총 열 개의 개념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천간(天干)을 이룬다. 즉 목은 양의 성질의 목인 갑(甲)과 음의 성질인 을(乙)로 구현하는 것이다. 갑을(甲乙)과 병정(丙丁), 무기(戊己), 그리고 경신(庚申)과 임계(壬癸) 등. 음양오행은 이렇게 열 개의 기운으로 우주를 구성하게 된다.
 


 

명리학은 이 열 개의 글자만을 깨친다면 이미 반환점을 돌았다고 할 수 있겠다. 첫 연재에서 선보였던 노무현, 문재인 두 대통령의 명식을 떠올려보자. 명식은 가로로 네 자씩 두 줄, 도합 여덟 개의 글자로 구성된다. 윗줄의 네 글자는 천간, 곧 하늘의 기운이고, 아랫줄은 지지(地支), 곧 땅의 기운이다. 그리고 세로로 두 글자씩 총 네 개의 기둥이 되기도 하는데 오른쪽부터 연주(年柱), 월주(月柱), 일주(日柱), 시주(時柱)라 일컫는다. 사주팔자(四柱八字)라는 말은 여덟 개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네 개의 축을 이르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 명식의 주체, 곧 나를 이르는 기준점은 일간, 즉 일주의 천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토, 문재인 대통령은 을목이 일간이다. 월과 시의 개념을 포함하여 말하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식은 가을 아침의 황량한 벌판이요, 문재인 대통령은 겨울 저녁에 핀 들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명식이 음의 기운을 중심으로 양의 기운이 에워싸고 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주가 일관되게 양의 기운이 관통한다. 그것도 양의 기운 중 가장 으뜸인 병화(丙火), 곧 태양의 에너지가 이글거린다. 무토 아래 인목 속에도 병화가 도사리고 있으므로 네 개의 주가 병화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끝도 없는 황야에 태양이 낮과 밤과 계절의 경계를 넘어 이글거리니 이상을 향한 거대한 욕망이 현실적인 이해타산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지역감정, 금권적 보스 정치가 지배하는 현실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그의 이상에 많은 이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카리스마를 지녔지만 퇴임 후까지 좌충우돌의 운명은 여전히 그를 지배했다. 그의 명식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기운은 뜨거운 땅을 식히고 생명을 흐르게 하는 수 기운이다. 그의 곁에 수 기운이 충만한 을목의 문재인 대통령이 그림자처럼 고요하게 동반했다는 것은 정말이지 운명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식과는 달리 문재인 대통령의 명식은 자신을 드러내는 과시적 행동력은 떨어지지만 생각이 깊고 욕심이 없다. 노무현에게는 수 재성(財星)이 결여되어 있고,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금 관성(官星)이 거의 없다. 권력 의지가 약하다고 지적된 것은 이를 말한다. 그런데 이 두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이 이들의 인생의 정점에서 등장한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한겨레 [ESC] 강헌의 명리하게 2018. 03. 08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35142.html

슈퍼곰팅2021.02.14 19:44

노무현의 이름만으로도  눈물이 나는건 왜인지 모르겠네요

한여름소나기2019.08.27 08:16

두 분의 아름다운 인연이 너무 짧게 끝나 버린것이 너무 가슴아프고 안타깝습니다. 가라앉아 있던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으로 먹먹해 지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