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가시밭길 예약 ‘편관’ 이재명, 쉽게 좌초하지는 않으리

“좌충우돌의 리더십은 무수한 상처를 안고 전진하는 편”


이재명 경기도지사. 한겨레 자료사진



관직에 나아가는 것은 봉건시대 중국과 조선에서 양반 신분의 남자가 꿈꿀 수 있는 유일한 출세의 길이었다. 양반으로 태어나도 관직을 가지지 못하면 이름 앞에 ‘학생’(學生)으로 묘비에 영원히 새겨지게 된다. 물론 학생이라는 말에는 평생을 초연하게 학문을 닦은 고결함을 기리는 뜻이 숨어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권력보다 더 달콤한 세속적인 욕망이 어디 있으랴.



전통 명리학에서는 거의 모든 가치가 관으로 통한다. 위로는 임금에 충성하고 아래로는 백성 위에 군림하는 힘을 가지는 것이 봉건 시대의 현실적 이상이었다. 물론 왕도정치의 근본은 백성을 임금 위의 하늘로 떠받들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인 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흔히들 성군이라 일컫는 조선의 성종 때에 이르면 이미 훈구파 권신들의 패악질로 과거를 무시하는 음서제도가 횡행하게 되고 멀쩡한 양민을 권력으로 노비로 삼아 사악한 사익을 추구하느라 나라는 개판이 된다. 이미 이때 노비는 전국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게 되면서 양민은 급격히 줄어들고 세금과 군역 의무는 지지 않는 양반만 늘어났으니 관(권력)이 곧 현실적인 지배의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성리학적 이상은 그저 책 속에만 존재했던 셈이다.



권력의 기반은 조직이다. 권력은 혼자서 절대 이룰 수 없다. 따라서 관은 조직, 그것도 가족 단위가 아닌 규모가 큰 사회적 조직을 말한다. 사기업임에도 공공적인 의미를 지니는 대기업도 관에 속한다. 관의 기반이 되는 이 조직을 영속하게 만드는 근원적인 가치는 다름 아닌 명예다. 이 명예는 이 대규모 조직인 관의 윤리로서, 이것이 무너지면 그 사회는 끝이다. 강자들의 약탈이 정당화될 때 관은 명예를 잃고 손가락질 받게 되며 민란의 화를 자초하게 된다.



 



10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지금, 관성의 위세는 예전 같지 않다. 명예보다는 돈이, 권력보다는 인기가 더 사랑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인 꿈에서 막 벗어난 중학생의 장래 희망이 공무원이라든지,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코스가 대기업 입사인 현실은 여전하다. ‘가문의 영광’이었던 관이 오늘에 이르러 ‘안정적 생존’의 권화가 되었다고나 할까?



오행의 상생상극 차원에서 보자면 관은 또한 일간인 주체를 극하는 강한 힘이다. 나를 극한다는 것은 나를 다스리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관성이 싱싱한 자들은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하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힘이다. 하지만 내가 너무 약하면 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 관성 중에서도 나를 직격(곧바로 치는)하는 편관이 너무 많고 나를 돕는 인성이나 비겹이 너무 옅으면 요절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고(옛날엔 평균 수명이 너무 짧았다.), 관직에 오르더라도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보았다.



편관이란 일간과 음양이 같고 일간을 극하는 오행을 일컫는 십성인데, 가령 갑목 일간이면 천간의 경(庚)금과 지지의 신(申)금이 편관이 된다. 같은 관성이건만 봉건 시대의 명리학이 찬양한 정관에 비해 편관은 대체로 다루기 힘든 흉한 관으로 보았는데, 이는 대세를 거스르고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거칠고 강한 기운 때문이다. 품행은 단정하지만 대세에 순응하는 복지부동의 공무원상이 정관이라면 기존의 질서와 불화하고 좌충우돌을 피하지 않으며 인기와 명예를 노골적으로 탐하는 풍운아적 기질이 편관의 본질이다. 뭔가 조폭 두목의 이미지가 어른거린다. 군신의 법도가 보수적이었던 왕조 사회에서 꺼릴 만한 기운이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회의 예측 불가능성이 훨씬 높아진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편관의 힘이 더욱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불화를 피하지 않는 힘, 변화를 필연이라고 생각하고 그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힘이 바로 편관이다. 그리하여, 편관이 가는 길은 가시밭길이 십상이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깨지고 구설에 오르고 열렬한 지지자보다 더 많은 적대자를 만들기도 한다.



시간에 정관이 아름답게 투출한 정승 황희가 일지에 정관을 놓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전형적인 정관형 정치가라면 신강하면서도 일지에 인목 편관을 도도하게 펼친 노무현은 편관형 인물이다.



이에 비해 문재인 대통령은 여덟 글자에 관 자체가 없는 무관 사주이다. (그가 왜 그리 정치에 투신하는 것을 그토록 꺼렸는지 암시해 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당대 최강의 편관형 정치가의 대표적인 인물은 지난 지방선거부터 지금까지 연일 언론의 표적이 되는 이재명 경기지사일 것이다.



문 대통령과 같은 을목 일간이면서 일지와 시지에 강력한 유금 편관을 품었다. 일간 을목의 힘도 만만치 않다. 연지 묘목에 뿌리를 내린 데다 월간 갑목으로 ‘등라계갑’(藤蘿繫甲)의 기세가 하늘을 뚫는다. 등나무 넝쿨이 아름드리 큰 나무를 타고 치솟아 오른다는 뜻이다. 목의 기운이 사주를 한뜻으로 관통하니 비타협적인 진보의 기운이 강력하고 능히 편관을 다스릴 수 있는 형국이다. 40대 이후 대운도 토화로 흘러 운도 그의 편이다. 그가 현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도약할 것인지 아니면 발목이 잡혀 추락할 것인지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데 이 명식을 보아 결코 쉽게 좌초할 인물은 아니다.





 

한겨레 [ESC] 강헌의 명리하게 2018. 09. 06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609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