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쉽게 비난할 수 없는 강한 중도의 힘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한겨레> 자료사진.


극한적 대립구도로 일관해온 우리 정치계에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를 수 있는 탕평의 정치력을 갖춘 인물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중도는 거의 존립하지 못했다. 친일파가 우익이 되는 코미디만큼이나 중도는 ‘사꾸라’로 모함 받았고, 잊을만 하면 등판했던 ‘제3지대론’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시점에서 누군가 ‘중도’를 묻는다면,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현재 행정안전부 장관인 김부겸이라고 대답하겠다. 그는 티케이(TK·대구경북) 출신(경상북도 상주)으로 한국 보수의 본산인 대구에서 초중고를 나왔지만,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해서는 유신 반대 시위로 구속되었고(총 3번에 걸쳐 옥고를 치룬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에서 활동하다가 1988년에는 ‘반지역주의 개혁정당’을 표방한 한겨레민주당의 창당에 참여하여 첫 총선에서 쓰라린 패배를 경험한다.


이후 진보정치연합을 거쳐 3당 합당을 거부한 ‘꼬마 민주당’에 들어갔다가 당시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신민주연합당과의 합당과 분당, 통합민주당, 통추 등 어지러운 세월을 보냈고 조순 서울시장의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가 조순-이회창의 연대로 창당한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제정구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2000년 총선에서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한나라당 내 소장개혁파로 첨예하게 주류와 대립하다가 이부영, 김영춘 등과 함께 탈당하여 ‘독수리 5형제’로 불리게 된다.


이후 민주당 탈당파 및 개혁당 국회의원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총선 및 지방선거 그리고 대선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2004년과 2008년 군포시 지역구의 수성에 성공하는 저력을 보였다. 가히 여야와 진보-보수의 경계선을 어지러이 넘나든 숨가쁜 행적이다.


 
김부겸 명식



하지만 그를 전국적인 인물로 만든 것은 보장된 4선을 스스로 포기하고 보수의 안마당인 대구에 단기 출격하여 2번의 낙선을 딛고 2016년 총선에서 소선거구제 하에서 무려 45년만에 민주당 계열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평생을 지역주의 타파를 외친 노무현도 해내지 못했던 쾌거였다.


김부겸의 명식은 가장 고결하다는 귀인인 천을귀인을 일지에 놓은 계사일주이다. 일지 사화는 일간 계수 아래에서 정재가 되며 이 정재는 다시 연간 병화로 머리를 디밀었으니 지지(땅)에서 천간(하늘)으로 뻗치는 강력한 기운이 된다. 무려 다섯 명의 대통령 아래서 장·차관, 부총리, 국회의원을 지낸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도 계사일주인데, 사화는 인목, 신금, 진토와 더불어 권력의 욕망의 의지를 나타내는 4개의 지지 중의 하나다. 그중에서도 사화는 특히 행정적 권력의 특성을 강하게 지니는 글자인데, ‘직업이 장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전윤철 전 감사원장도 일지, 월지가 모두 사화이다.


이 명식의 또 하나의 주안점은 그 권력의 글자 중 세 개, 즉 인, 사, 신이 모여 삼형(三刑)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힘이기도 하고 지배당하는 엄청난 힘이다. 즉 극한적 권력을 가지거나 바로 그 권력에 의해 구금당하기도 하는 힘이다. 실제로 그는 사화와 신금년에 구속 수감되었지만, 용희신년이자 권력의 글자인 2000년 경진년, 2004년 갑신년, 2016년 병신년 선거에서는 모두 이기기도 했다.


정재는 그저 자신이 노력한 만큼만 들어오는 재물, 곧 월급쟁이 십성이라고 자조하기 쉽다. 일확천금에 눈이 먼 시대에 하찮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재, 곧 올바른 재물의 진정한 철학은 그렇게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


명리학이 진정으로 말하는 재물이란 그 주체가 우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핵심적인 재화, 재능, 그리고 인간 관계를 말한다. 만약 누군가의 소명이 학문의 길이라면 적어도 일가를 이룰 때까지 공부할 수 있는 재화와 공부 능력, 그리고 그를 이끌어 줄 스승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강렬한 학문의 명을 부여 받았어도 15살부터 식솔을 부양해야 하는 삶의 조건에 처해진다면 그 명을 실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정재는 그저 통장에 정기적으로 찍히는 재물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반듯한 품성과 인내심, 그리고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그것의 지속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그러다보니 속이 좁게 보이기도 한다. 정재형 사람에게 한번 신뢰를 잃으면 좀처럼 회복하기 힘들다. 보자마자 매력이 드러난다기보다는 긴 시간을 통해 초지일관하는 자세에 매료되는 스타일이 바로 정재의 본성이다.


이 명식은 목 상관과 화 정재가 강해 이상을 향한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것이 정재의 원칙성을 가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면엔 신중한 토 관성과 굳센 금 인성이 도사리고 있다. 함부로 자신을 소모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힘도 강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수많은 당적을 옮겼지만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난의 딱지가 붙지 않았다. 어느 곳에 있건 그는 일관된 자신의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사지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지만 오년을 무관으로 버티는 집중력이 대단했다. 진보와 보수 어느 양극단에서도 쉽게 비난할 수 없는 정재적 중도의 힘이 이 명식에서 강렬하게 느껴진다.




 
한겨레 [ESC] 강헌의 명리하게 2018. 08. 22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587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