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감당하기 어려운 일확천금은 오히려 독!

뉴욕 필하모니의 전 상임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한겨레> 자료 사진


우리가 ‘재물’의 의미로 알고 있는 재성은 편재(偏財)와 정재(正財)로 이루어진다. 비겁(비견과 겁재)이 나 자신 혹은 나와 같은 것이고 식상(식신과 상관)이 내가 낳는 것 혹은 내가 생(生)하는 것이라면 재성은 내가 극(剋)하는 것, 즉 내가 다투고 경쟁하여 획득하는 것이 된다. 육친 상으로 보면 이해가 더 쉽겠다. 식상은 내가 낳는 것이니 자식에 해당하고 재성은 내가 극하는 것이니 남녀 모두 아버지가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남자에게는 처 혹은 애인이 재성에 해당한다.


비겁과 식상은 일간과의 음양 관계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는 데 반해 십신을 이루는 나머지 세 그룹, 즉 재성과 관성, 인성은 모두 편(偏)과 정(正)으로 나뉜다. 편재와 정재, 편관과 정관, 편인과 정인. ‘편’은 치우쳤다는 뜻이니 어딘가 모나고 삐딱하게 느껴진다. 비겁과 식상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도 어떤 편견이 강하게 다가온다.


‘재-관-인’은 예로부터 숭상을 받았던 십신의 개념이다. 각각 재물과 관직, 학식을 의미하는 것들이니 성인의 사회적 활동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이다.


봉건시대에는 권력을 의미하는 관(官)이 최고의, 거의 유일무이한 가치였다. 왕을 정점으로 수직적인 신분 사회였던 탓이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 이후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공화국 시대가 열리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로 급속히 이행하면서 오랫동안 지켜온 관성의 권좌는 재성에게 이양된다.


물론 아직도 봉건 시대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삼국시대 중국에서 유래하는 승관발재(升官發財)라는 말이 있다. 벼슬을 통해 재물을 얻는다는 말로서, 권력을 가져야 그 힘으로 큰 재물을 쌓는다는 위험천만한 뜻이다.


생산 행위로 부를 쌓는 것을 천하게 여기고 권력 행위로 부를 쌓는 것을 귀하게 여긴 것이 봉건시대의 필연적인 몰락을 가져온 동인이다. ‘관’(官)은 권력이기에 앞서 명예임을 알지 못한 소치다. 군자와 소인배는 이 지점에서 갈린다. 학식의 깊고 얕음이나 권력의 높고 낮음이 아닌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위임받는다는 것은 ‘명예로운 머슴’이 되어 백성을 위해 일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아직도 ‘출세’라는 개념으로 혹은 나아가 ‘치부’의 개념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후진국의 불행이다.


자본주의적 약탈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면서, 재물욕은 그나마 부실하던 명예욕을 간단하게 무장해제 시켰고, 성욕과 식욕, 안정 욕구마저 뛰어넘어 폭주하는 중이다. 정재가 자신의 노동으로 꼬박꼬박 벌어들이는 재물이라면 편재는 일확천금, 불로소득을 의미한다. 수십 년을 근면하게 일해도 거개 사람들이 집 한 채 사기 힘들어진 시대에 ‘돈벼락’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일 것이다.


 
레너드 번스타인 명식.


많은 사람이 생각한다. 자신은 돈 때문에 불행하다고. 돈만 있으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고. 과연 그럴까?


봉건시대의 현자들은 정재를 자기 몸에 지닌 재물, 편재를 자기 몸에 지니지 못할 재물이라고 보았다. 자기 몸에 지니지 못하는 재물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 한마디로 자신의 명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재물은 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재물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쓰지 말고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니, 결국 그 편재의 재물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성은 재물이기 이전에 인간의 네트워크이다. 정재가 좁고 깊은 인간관계와 정규적인 노동을 의미한다면 편재는 넓고 얕은 관계망과 자유로운 노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안정성 측면에서 편재는 정재보다 유동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빈궁한 경우가 더 많다. 또한 정재가 품성이라면 편재는 기질이다. 유머 감각도 있고 인기도 많으며 기획력이 좋다. 편재는 획일적인 틀을 견디지 못하므로 개성이 존중되는 환경이 필요하다.


카라얀과 더불어 세계 오케스트라 지휘계를 양분했던 전 뉴욕 필하모니의 상임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명식을 보면 편재의 현대적 성격이 잘 드러난다. 일지의 편재가 연간에도 꽃을 피워서(이를 명리학 용어로 투출이라고 한다.) 지휘 말고도 피아노 연주자로서 그리고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위시한 수많은 명곡의 작곡자로서, 그리고 티브이 브라운관의 뛰어난 클래식 교육 방송의 진행자로서의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는 한편으로 월주 편관의 리더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강력한 재생관(財生官)의 전형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일간 갑목이 이 사람처럼 진토에 뿌리내릴 때 가장 아름답긴 하지만 재와 관이 너무 창성해서 일간의 힘을 탕진시키는 것이 조금 문제다. 실제로 그는 하루에 다섯 갑의 담배와 한 병의 위스키를 피우고 마셔댔다고 하니 지휘자로서는 다소 이른 73살에 세상과 작별했다.


흥미로운 것은 라이벌 카라얀의 명식도 일지가 경인일주 편재라는 것이다. 카라얀의 시지가 식신이니 두 사람 모두 식상이 재성을 생하는 식상생재의 구조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베를린필)의 종신감독이었던 카라얀의 카리스마가 단원들 모두의 수입을 크게 신장시켜준 재물의 힘에서 나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겨레 [ESC] 강헌의 명리하게 2018. 08. 09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568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