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11년 정치 인생 은퇴한 유시민, 돌아올까


유시민. 윤운식 기자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고 앙리 레비는 나아가 모든 권력의 원천은 말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말과 글을 통해 소통하고 문명을 일구었으며 공동체를 존속 혹은 확장했다. 요한복음 1장 1절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로 시작하지 않던가?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거의 모든 재앙은 혓바닥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왕조 시대의 최고의 처세는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가 아니었을까? 말 한마디로 역모로 몰리고 역시 말 한마디의 고변으로 삼족이 멸문하는 것은 사극의 전통적인 레퍼토리다. 굳이 그런 사대부층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평범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장 상처 입고 상처 입히는 근원은 거개가 말 한마디이다.

 

말 한마디는 빛나는 예지이기도 하고 (모든 광고 카피는 이 경지를 꿈꾼다) 불의에 대한 비수이기도 하지만 (혁명의 구호 한 마디에 역사성이 집약된다) 오늘날의 수많은 ‘악플(악성 댓글)’ 홍수에서 보듯이 인간의 영혼을 저열하게 파괴하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다.



이 명식은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논객이자 작가인 유시민의 것이다. 지금은 자유로운 프리랜서로 베스트셀러 작가도 되었고 브라운관에서 예능감도 널리 발휘 하고 있는 중이지만, 대학생 시절이던 1980년 광주항쟁 국면에서부터 이른 정계 은퇴를 선언하던 2013년까지 청년에서 장년에 이르는 삼십여 년간은 한마디로 드라마틱한 좌충우돌의 불타는 시간이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서애 유성룡의 13대 직계 손이자 ‘부끄럼 많은 샌님’ 청년인 그를 역사의 뜨거운 현장으로 불러낸 것은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 시대를 가로지른 ‘불의’였다. ‘서울의 봄’ 이후 강제 징집되고 전방에 끌려갔다 제대한 이후에는 학원 프락치 사건에 휘말려 법정에 서게 되었지만 그의 ‘항소이유서’는 격정적인 명문으로 전국 대학가의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유시민 명식.


 

일지가 상관인 신해 일주는 임신 일주와 더불어 총명함을 간직한 대표적인 일주로 특히 언변에 뛰어난 특성을 보인다.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수다에 가까운 다변으로 지치지도 않고 영화를 만들어 가는 미국의 노장 감독 우디 앨런의 일주 또한 같은 신해이다. (우디 앨런은 한술 더 떠, 지지 네 개가 모두 해수 상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기묘한 명식이다.)



옆의 월간까지 신금이라 더욱 강력하고 차가운 신해 일주가 한여름의 뜨거운 오전(미월 사시)의 기운과 대칭을 이루고 있으니 사화 정관을 해수 상관이 쟁충(爭沖)해서 상관은 더욱 기가 오르고 정관은 불안정한 형국이니 풍운아적인 그의 고된 정치 이력을 떠오르게 한다. 이 명식의 핵심은 일주와 연지를 차지하고 있는, 정의를 향한 반항으로서의 상관의 기운이다.



고전에서 상관은 상생상극의 법칙상 봉건 시대에서 가장 숭상했던 출세로서의 정관(正官)을 극하는 십신이므로 4 흉신 중의 하나로 지목되었다. 상관은 이름부터 같은 동료인 ‘식신(食神)’ 같은 풍요로운 이름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출세를 의미하는 관직을 상하게 하는’ 뜻이니 그 편견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여성에게 상관은 더욱 치명적인 것이어서 관직뿐만 아니라 남편을 의미하기도 하는 정관을 공격하는 기운이니 상관의 여명(女命)은 중매 시장에서 배척되기 일쑤였다.

 

하자만 오늘날 다양성을 기초하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관의 역할은 막중하다. 시민에 의해 위임된 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비판하는 사법부나 시민단체, 언론의 기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막중하며, 옛날과는 달리 이런 시민사회 영역 출신들이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도 한다. 검사와 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상관을 푸대접했던 고전에도 상관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비범한 재능을 품고 있다고 했고, 무엇보다도 논리적인 사고 능력이 특출하다고 했다. 식신이 감성적 언어라면 상관은 이성적 언어인 것이다.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1980년대 말 수배 시절의 유시민이 필명으로 방송국 드라마를 쓰기도 했고 ‘창비’에 소설가로도 등단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자신의 무기인 바로 그 말 때문에 많은 구설과 공격을 받는 것도 또한 상관의 특징이다. 흔히 말하는 입바른 소리, 상황을 두루 살피지 못하고 옳다고 믿는 것을 내지르고 마는 경솔함 때문에 일을 잘 수행하고도 박한 평가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영춘 의원이 유시민을 두고 ‘저토록 옳은 말을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것도 재주’라고 저격한 것도 어찌 보면 상관의 본질을 무의식적으로 포착한 묘사라고 생각한다.

 

외모 상으로도 약간 펑퍼짐한 식신에 비해 상관은 마르고 스마트한 경우가 많다. 시쳇말로 화면발이 잘 받는데, 지성적인 분위기의 미남 미녀가 많다. 그러나 전체 명식으로 보아 일주의 기운이 약할 때(유시민도 신약하다) 상관은 하나를 깊이 있고 끈질기게 파고드는 동력이 다소 부족하다. 스스로 패배를 선언하고 끝낸 유시민의 11년 현실 정치 활동이 그래서 더욱 애석하다.




 

한겨레 [ESC] 강헌의 명리하게 2018. 06. 27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50936.html